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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cycle diaries

1일째(8. 5), 일산 > 오산 > 발안 > 천안 > 병천



07:07

드디어 출발이다~~!

자전거와 짐을 챙겨 현관문을 나서니 어머니께서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라나오셨다.

카메라를 건네니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는 말씀을 하시며 찍어주셨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파이팅!'으로 대답하고 그렇게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첫 일정은 일단 복잡한 서울 시내는 버스로 건너뛰고 오산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09:15

오산 버스터미널 도착.
버스 타기 전에 분해했던 자전거를 다시 조립하면서 머릿속으로 이동 경로를 그려봤다.
출발에 앞서 슈퍼에서 물을 보충하고 이번 여행에 대한 결의도 재확인해봤다.
비로소 페달질을 시작하니 여행기분 탓인지 스쳐 가는 풍경들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근데 한 30분쯤 달렸을까? 벌써부터 아스팔트는 한증막처럼 달아올라 더위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11:05

제암리 3.1 운동 순국유적지 도착.
한 시간 반 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
경치를 구경하면서 가도 좋으련만 옆을 지나가는 차들이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그럴 여유는 좀처럼 허락되질 않았다.
게다가 제암리 3.1 운동 순국유적지 부근까지 다 와서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더욱이 그러했다.
저 멀리에 서 있는 입구 간판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









제암리 3.1 운동 순국유적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이 3.1운동 순국 기념탑이다.

이 탑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제암리 학살사건으로 유명한 제암교회가 있던 곳이다.









3.1 운동 순국 기념탑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새로 지은 재암교회와 순국기념관이 있다.










순국기념관에 자전거 쫄쫄이 바지를 입고 들어가는 건 순례자의 도리가 아니었다.

이곳은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순국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바지를 겹쳐 입고 최대한 복장을 단정히 했다.









관람을 마치고 유독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문구가 있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일본기독교인들이 과거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고자 헌금을 모아 제암교회를 방문했을 당시,
제암리 학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신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일본에 있을 때 일본 친구가 과거의 만행에 대해서 사죄한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과거의 일이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마!'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었는데 일제의 만행을 접하고 나니
그 할머니께 너무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이곳은 제암리 학살로 말미암아 희생된 23위의 넋을 모신 장소이다.

묘역 앞에서 두 손 모아 순국열사 분들을 추념해본다.









묘역을 참배하고 내려오면서 길 옆에 있던 수도에서 더위를 식히고 나니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13:07

발안 시내 롯데리아에서 점심.
점심을 먹으려고 시장을 찾아 한참 돌아다녔다.
시장음식이 저렴하고 훈훈한 인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말 때문일까? 오는 날은 장날이 아니란다.
그래서인지 식당들이 하나같이 문을 닫고 있었나 보다.

14:35 삼거리상회 휴식.
발안에서 천안까지는 39번 국도를 통과해서 1번 국도로 가야 한다.
39번 국도는 주변에 공장들이 많아서 큰 차들과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많아 고생좀 했다.
39번 국도와 1번 국도를 이어주는 302번 지방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39번 국도를 건너야 했는데
횡단보도가 없어 위험했다.
302번 지방도에 들어서니 시골 길답게 차도 없고 한산해서 편했다.
그제야 한숨 돌릴 겸 구멍가게에서 게XXX음료를 보충했다.








17:40

음악 시간에 민요를 통해서 알게 된 천안삼거리에 도착했다.
'천~아~안~사암~거리 흐~흐으응'
콧노래를 부르며 천안삼거리를 지나쳐서 10여 분 달리니 말로만 듣던 천안삼거리 고갯길이 나왔다.
이렇게 급하고 긴 오르막은 처음이었다.
고갯길을 오르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체력이 고갈되어 자전거를 끌다시피 했다.
오르막이 끝나고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반드시 고생 끝에는 낙이 있구나!'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내리막에선 좀전의 괴로움을 잊고 병천까지 페달 한번 밟지 않고 신 나게 내달렸다.

18:47
한 시간 가까이 내리막을 달려 병천에 도착했다.
우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을 먹고 오늘 밤에 묶을 곳도 찾아야 했다.
텐트를 치고 자도 되지만, 동네 불량배를 만날 것만 같고 엄청 피곤하기도 해서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수소문 끝에 상록참숯가마로 갔다.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원래 24시간 운영이었는데, 지금은 자정까지만 영업한다.
'어... 나 자고 가야 하는데...!'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고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그럼 자고 가란다.
그 대신 자정 이후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는데, 오히려 나한테는 훨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찜질방에는 밥 먹을 데가 없다고 해서 밥 먹으러 다시 나가야 했다.









찜질방 근처 성오식당에서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만났다.
말할 기운도 없이 밥도 겨우 먹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자전거 여행이 신기해 보였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래서 여행에 대해 몇 가지 대답해 드렸는데
젊은 사람이 말도 잘 받아주고 또 이렇게 많이 이야기해 본 적이 없으시다면서 기분 좋으신 모양이었다.
밥 다 먹고 계산하려니까 돈을 안 받으시겠단다. 그 돈으로 음료수나 사 먹으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얻어먹고야 말았다.^^
정말이지 기역자로 공손히 인사를 드린 후 식당을 나왔다.
주인아저씨와 대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피곤이 날아가 버린 듯 기분이 좋았다.

 아, 여행 첫날부터 공짜로 저녁도 얻어먹고 찜질방 전체를 혼자 쓰게 되니 왠지 여행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찜질방으로 돌아와서 여장을 풀고 목욕하고 빨래하고 오늘의 여정을 정리해본다.
 여태까지 살면서 다리에 쥐가 많이 나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동경로 : 일산 > 오산 > 발안 > 천안 > 병천
이동시간 : 6h 40m 48s
평균속력 : 18.3km/h
최고속력 : 49.5km/h
이동거리 : 122.37km
누적거리 : 122.4km (버스 구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