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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cycle diaries

5일째(8. 9), 고창 > 영광 > 함평 > 목포



07:47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텐트를 치고 잤다.
역시 야외는 각종 벌레들이 가만두질 않는다.
6시쯤 눈을 떴는데 뒤척이다가 7시가 다 돼서 일어났다.
텐트 밖으로 나오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짐정리를 속히 하고 텐트를 걷었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밥과 김치로 아침을 떼우고 화장실에서 설겆이와 세면을 했다.










09:00
최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을 둘러보았다.
고인돌은 470여기에 이르는데 옛날에는 그 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고 전해진다.
얼마 전까지 고인돌 유적지에 주민들이 거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인돌의 훼손이 심했는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 얼마 전까지 유적지 맞은 편 강너머로 주민 이주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걸 증명하듯 아직 고인돌 주변에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고창 고인돌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이렇게 많은 고인돌이 집단으로 있는 곳은

세계에서 이곳 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0:05
유적지를 출발해서 도중에 슈퍼에 들러 통을 돌려드리고 다음 목적지인 영광으로 향했다.









13:50
고창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영광을 찍고 다시 808번 지방도를 따라 더 내려가 영광군 염산면에 도착했다.
영광군 염산면을 여행 계획에 포함한 이유는 기독교 순교지를 순례하기 위함이다.

이 지역이 기독교 순교지가 된 역사적 배경은 이러하다.
6.25 전쟁 당시 영광군 염산면과 백수면은 국군이 가장 늦게까지 수복하지 못하고 고립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국군이 진군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미처 퇴각하지 못하고 고립돼 있던 인민군은
이 지역에서 국군 환영대회를 준비한 기독교인과 주민들을 무조건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염산교회, 야월교회, 백수읍교회, 영광대교회, 묘량교회, 법성교회 등에서 다수의 교인이 순교를 당한 것이다.
특히 염산교회에서는 77인의 순교자들이 목에 돌을 매달아 설도항 수문에서 수장되었고,

야월교회에서는 교인 전체 65인이 몰살당하였다.
이 당시 예수믿고 패가 망신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염산교회에 방문하니 순교체험관 건립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중이었기 때문에 순교연구소 내부에 들어서니 아쉽게도 많은 자료들이 정돈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천천히 둘러보면서 순교자들과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14:11
염산교회 앞에 있는 설도항으로 내려가니 영광군에서 세운 기독교인 순교탑이 있었다.
순교탑에 새겨진 설명문과 설도항의 바닷물을 보라 보며 목에 돌을 메달아 수장된 순교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14:30
설포항에서 야월교회로 가려는데 나의 발길을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이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야월교회 방향으로만 비가 내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쪽으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비려니 생각하고 설도항 버스정류장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데 천둥과 번개가 점점 심해지며

어두워지기까지 했다.
점심도 못 먹은 터라 기운이 없었던 탓인지 두렵기도 했다.
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전에 비가 내리지 않는 방향으로 서둘러 영광을 빠져나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는 염산교회에서 야월교회 순교기념관을 방문한 후 염전, 백수교회 등을 돌아보고 영광에서 하루 묶을 계획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고창에서 법성포로 가서 법성교회를 들리고 다시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백수교회로 갔다가 천일염전을 지나 야월교회를

방문한 후 염산교회를 찍고 영광읍으로 가서 영광대교회까지 순례하는 코스의 동선이 효율적이다.
아~성급하게 여행계획을 세운 준비부족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ㅠㅠ











14:58
함평 지산마을에 이르니 해바라기 밭이 쭈욱 펼쳐진 게 장관이었다.
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께 "여긴 왜 이렇게 해바라기 꽃이 많아요?"라고 여쭤보니,
계약재배를 하는 농장이라고 하셨다.










15:40
계속 남하하는 가운에 함평 엑스포 공원 부근에서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이 안보일정도인데다가 빗줄기가 너무 따가워서 나들목의 다리 밑으로 피신해야 했다.
군산에서 레인자켓을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홀딱 젖지는 않았을 텐데...속상한 감정이 다시금 몰려왔다.

정처 없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도중에 자전거 여행자 한 분이 나타났다.
그분은 28일재 전국을 지그재그로 훑어내려 가는 중이라고 하셨다.
장비가 완전 수준급이었는데, 나보고도 꽤 준비를 많이 해서 온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다.
오늘은 나주에서 묶을 거라고 하시면서 인사를 하고는 빗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곧 비가 그치고 나도 출발했다.








스쿠터 여행자가 찍어 준 사진

스쿠터 여행자가 찍어 준 사진


16:30
함평 해정사거리 부근에서 갑자기 스쿠터를 타고 가던 여행자 2명이 나에게 인사하며 말을 걸어왔다.
조금 전에 비가 엄청 내리는 바람에 자신들은 나주에서 비를 피했다가 오는 길인데 나보고는 어떻게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냥 비를 맞았다고 하니까 대단하다며 사진을 좀 찍어도 괜찮겠냐고 했다.
사진을 보내주면 그러겠다고 하니까 이 메일 주소 알려달란다. ㅋ
몇 가지 포즈를 시키며 사진을 찍더니 연양갱을 하나 주고 떠나갔다.








18:03

목포까지 10여km 남은 지점인 지산리 부근에서 다시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가려고 했는데 어찌나 비가 많이 내리는지 빗물이 홍수가 난 듯이 10cm 높이로 도로 위를 흘러갔다.
바퀴는 빗물에 완전히 침수돼서 앞으로 잘 나가지지가 않아 버스정류장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함평에서도 그랬듯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도록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해는 8시쯤에 넘어가지만, 오늘은 흐린 날씨 때문에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거 텐트 칠 곳도 마땅찮고 비 오는 야간에 달리려면 상당히 위험할 텐데...'
최후의 수단으로 119에 도움을 청하기로 맘을 먹고 있는데 빗발이 좀 약해지는 것 같아서 이때다 하고 바로 출발했다.

19:00
드디어 목포에 입성했다.
목포의 관문을 통과하기가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다.
장대비가 내렸던 지산리 부근에서, 목포 인터체인지를 지난 부근 그리고 가톨릭대 앞 등

세 곳에서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왔기 때문에 목포 3.1 독립만세운동의 중심이었던 양동교회로 향했다.







두 장을 어어붙인 사진



19:43
양동교회에 도착하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교회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저씨 한 분이 다가오시며 무슨 일로 왔는지 물으셨다.
기독교 성지를 순례하는 중이라고 말씀드리니까 잘 왔다고 하시곤
자기는 이 교회를 다니는 집사인데 내일이 주일이라서 차량봉사 때문에 교회 봉고차를 가지러 왔다가
나를 발견하신 것이라 하셨다.
이어서 교회의 연혁에 대해서 짧게 설명해 주시곤 여행 잘하라고 말씀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집사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양동교회는 목포가 개항하면서 생긴 제일 먼저 교회인데 2004년이 107주년이었으니까 올해는 111주년이 된다는 것.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었고 신사참배도 반대했었기 때문에 일제의 박해를 많이 받았는데 10대 목사님이 순교하셨다는 것.
그리고 교회 본당이 근대문화유산 관리된다는 것이었다.

20:23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옥암동 극동방송 앞에 있는 하당보석사우나로 가서 여독을 풀었다.
내일은 9시에 출항하는 제주행 배를 타야 하기에 일찍 잤다.
오늘은 비로 때문에 참으로 힘든 하루였다.
비만 아니었으면 영광을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동경로 : 고창 >영광 > 함평 > 목포
추천경로 : 고창 > 법성교회 > 백수해안도로 > 백수교회 > 염전 > 야월교회 > 염산교회> 영광대교회 > 함평 > 목포

이동시간 : 6h 59m 23s

평균속력 : 17.4km/h

최고속력 : 48.5km/h

이동거리 : 121.47km

누적거리 : 585.3km